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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피부가 붉어지면서 띠 모양으로 물집이 잡히고 딱지도 생기면서 엄청나게 아픈 질병, 바로 대상포진이다.
필자가 처음 대상포진 환자를 접한 것은 의대 본과 4학년 겨울이었다. 당시에 나는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기숙사 같은 층에 1년 위 학번인데 휴학을 하여 나와 졸업을 같이 하게 된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전부터 사귀고 있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와 헤어지면서 실연의 상처가 컸는지 휴학을 하였다.
서울의대에서는 연말이 되면 지난 1년 동안 배운 엄청난 분량의 의학지식을 1달에 걸쳐 한꺼번에 시험을 본다. 연말에 쉬지도 못하고 엄청난 분량의 책과 노트에 파묻혀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연말시험이 끝나면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의사국가고시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실연의 상처와 공부 스트레스가 겹쳤는지 이 선배가 연말시험이 끝나고 의사국가고시를 준비하는 동안에 대상포진에 걸렸다.
어느 날 아침에 선배를 만났는데 부산사투리를 섞어 “어젯밤에 억수로 아파 죽는 줄 알았데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밤중에 등에 불이 난 것처럼 화끈거리고 따갑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 다급하게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왔다는 것이다. 기숙사와 응급실은 같은 경내에 있으면서 걸어서 100?m 이다. 응급실에 갔더니 피부과 당직 레지던트가 와서 마약성 진통제인 코데인만 처방해주었다는 것이다. 당장에 아픈데 약만 처방받고 나오니 얼굴에 힘들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업시간에 대상포진이 어떤 병이라는 강의만 들었을 뿐 당시 거기에 대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힘내시라고 위로해 주는 것 말고는 해줄 것이 없었다. 다행히 그 선배는 대상포진을 이겨내고 의사국가고시에도 합격하여 의사가 되었다.
그 이후에도 가끔씩 대상포진 환자를 보기는 하였으나 본격적으로 대상포진이라는 질병과 대상포진을 앓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경기도 일산에 통증클리닉을 개원한 다음부터이다. 절절 끓어오르는 통증에 어쩔 줄 몰라 괴로워하는 환자에게 내가 알고 있는 치료를 해주었더니 통증이 싹 사라졌다며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며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기쁨보다는 치료를 하였음에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힘들어 하는 환자를 보며 나의 실력이 이것 밖에 안 되는지 한탄한 적이 더 많았다. 치료가 잘 되지 않은 환자를 보면 왜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았는지 그 이유와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과 번민하는 날을 보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고민과 번민이 더 나은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자극제가 되었다.
대상포진에 걸리면 피부에 빨간 발진이 생기고 물집이 잡히므로 흔히들 피부 질환으로 생각하고 피부과를 먼저 찾는다. 그러나 대상포진은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신경을 손상시키고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으로 피부 질환이 아니라 신경병(神經病)이다. 대상포진을 제대로 치료받으려면 신경치료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대상포진을 제때에 적절하게 치료받지 못하면 심각한 합병증이 생겨 두고두고 고생할 수 있다.
최근들어 신문, 방송, 인터넷 등에서 대상포진을 많이 다루면서 대상포진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진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대상포진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전달해 주기 보다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일부분만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필자는 대상포진과 대상포진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보며 대상포진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면서 환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이 많은 데 비해 여러 가지 여건상 제대로 설명을 못해 아쉬운 경우도 많았다.
이 책은 대상포진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대상포진을 쉽고 정확하게 알려주기 위해 쓰여졌다. 아무쪼록 필자의 작은 노력이 대상포진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없게 하는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